몸은 멀리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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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플
몸이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던가? 올해 들어 부쩍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태평양 만큼이나 넓은 마음의 간격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어제 통화만 해도 그렇다.
“엄마, 저 이제 일 시작했어요. 용돈 보내 드릴께요.”
전혀 기뻐하는 웃음과는 다른 헛헛한 웃음 소리와 함께 어머닌 “애들도 어린데 일은 무슨 일이냐, 니 번역일 해서 백 만원이나 버냐” 하시며 가뜩이나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벌이가 신통치 않아 편치 않은 마음을 쑤시고 지나가신다.
지난 달엔 어머니가 돌봐드리는 자식없는 할머니가 외롭다고 불평할 때, 어머니가 그러셨단다.”자식 있다고 안 외로운 줄 아세요? 늙고 병들면 자식들도 싫다고 하지 누가 좋다고 매일 찾아와서 돌봐준다고 그래요? 자식 없다고 서러울 것 하나 없어요.” 꼭 나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엄마, 정말 자식들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아요?” 하니, 내 이제야 속에 품고 있던 말을 하마 작정하신 듯, “그래, 너 있어도 무슨 소용있냐? 그리 멀리 있으니 자주 볼 수도 없고. 내 아파도 나 돌봐주지도 못할 꺼고. 없는 거나 똑같지. 뭐, 그래도 난 괜찮다. 난 끄덕 없어. 난 외롭지 않다.” 그리 당당히 외치셔도 정작은 나이든 부모 버리고 멀리 떠난 자식 탓하는 듯 들린다. 내 자격지심인가?
하긴 지난 10년 간 한국에 세 번 방문하면서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다섯 달 씩 머물렀으나, 3,4년 만에 한 번 씩 나와 머무르니 마냥 손님같은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전화통화도 아이들 때문에, 어머닌 부엌에서 요리를 하시느라 20분 이상을 집중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다. 날씨, 건강, 가족들 안부를 돌아가며 물은 후 침묵이 흐르기도 한다.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품고 사시는 지, 난 무슨 맘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정감있는 대화를 해 본 지가 언제였던가? 그저 툭툭 던지는 한 두 마디 말들을 수화기를 놓은 후 곱씹으며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오해하기 일쑤다.
어머니와 장녀이자 유일한 딸인 난 그렇게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이가 아니었다. 얘기하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난 두 귀를 종끗 세워 혹은 한 귀로만 살짝 흘리기도 하면서, 함께 마늘을 깔 때, 텔레비젼을 볼 때, 빨래를 갤 때, 설겆이를 할 때 끝없이 듣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시내에 나와서 살 땐 금요일 마다 어머니 일이 끝나시는 9시 30분 쯤 함께 1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 집까지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벌어진 일, 어머니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일을 단짝 친구처럼 편하게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머니와 자란 세대도 틀리고 무엇보다 성격이나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니 이야기가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껜 적어도 다른 내 생각을 두려움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어머닌 항상 밖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선지 난 여성으로 일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반대로 아버지와 똑같이 직업을 가지고 일하시는데 집안 일은 어머니가 맡아서 하시는 것을 보고 난 왜 여자만 집안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많이 던졌으며, 반발심에 음식하는 걸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어머닌 마음이 열려있는 분이었다. 바쁘셔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라거나 친구들 집에서 자면 안된다든가,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거나 하는 규칙이 없었다. 자유와 신뢰, 이 두 가지가 어머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누가 항상 나를 믿고 있으니 그 믿음에 배반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책임감있게 공부하고 성실하게 생활해야 했다.
물론 내가 어머니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건 아니다. 어머니에게 비밀이 없었던 건 더더욱 아니다. 내게 주어진 20대 만의 자유로 실수도 했고 만용을 부리기도 했으며 떠올리면 어리석음에 가슴이 뜨끔해지는 부끄러운 일도 저질렀다. 그렇게 창피한 일을
하면서도 그래도 내게 나를 굳건히 사랑해 주는 사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품이 있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외국인과 결혼해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사는 게 내가 어머니께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 아닌가 싶다. 내가 필요할 때 어머닌 항상 그곳에 계셨는데, 막상 어머니가 손을 내밀고 싶을 때 딸은 전화 속의 목소리 만으로 남은 것이다. 첫 몇 년 동안엔 그래도 한국에 나와서 살지 않을까, 겨울마다 춥다고 불평을 하니 한국에서 자리잡으며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고, 우리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드렸는데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방문하는 것도 더 드물게 되니, 어머닌 마침내 우린 영원히 멀리 있을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신 듯 싶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섭섭한 마음을 그리 내 맘을 휘저으며 내비치신듯 하다.
어머닌 모르실 것이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항상 일을 해야 하셨던 어머니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내 흰머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 내 나이 때를 얼마나 되새김질 하는지. 아이들 아플 때마다 내가 아플 때 내 머리에 손 얹어주신 어머니 생각을 한다는 걸.
내 몸은 이리 멀리 있어도 마음은 오히려 어릴 때 보다 더 가까이 있음을 어떻게 알려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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