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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01-프롤로그(로미오와 줄리엣)_05 [0] | 배일도

번호 96 | 09.03.13
조회 1878 | 추천추천 1

-AM 11:20-

"끼이이익!"

입구에 들어선 유성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좌측에 하나, 우측에 셋..나머지는 어딜 갔지?'

방법은 하나,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넷중의 하나를 골라 족치면 될 것이었다. 좌측에 홀로 앉아 있던,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유성에게로 다가왔다.

'당신 뭐야?"

"고등학교 선생님."

"나 참, 별 그지깽깽이 같은게..기도하려거든 딴 데 가서 해!"

선글라스의 사내가 유성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유성은 그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끄윽..! 너 뭐하는 새꺄?"

"말했잖아, 학교 선생이라고. 가서 너희 두목한테 말해. 양대수, 김윤수, 조태현 이 셋만 곱게 넘겨주면 아무일 없을 거라고. 쌍방간에 피를 보는 일은 되도록 자제하는 게 서로간에 이로울 테니까."

유성은 남자의 목덜미를 놓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남자는 괴로운 듯 연신 헐떡거렸다.

"딱 십 분을 주겠다."

선글라스의 사내는 저만치 가더니 갑자기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킬킬킬..이게 뭔지 알아?"

"...?"

품 속에서 호루라기를 꺼내든 남자는 그것을 입에 가져갔다.

"삐이이익!"

"무슨 수작이지?"

"뭐긴, 널 저승으로 보내는 신호지. 얘들아, 없애버려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측에 읹아 있던 셋 중 하나가 유성을 향해 빠르게 덮쳐왔다. 얼굴에 가면을 쓴 이 사내는, 유성이 미처 방어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그의 가슴에 일 장을 내갈겼다.

"큭!"

난데없이 습격을 당한 유성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그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상대의 발이 그의 안면을 향해 폭사했다. 유성은 간신히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지만, 그의 뒤에 있던 교회 의자는 그대로 반쪽이 나고 말았다. 유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얕보면 큰일나겠군.'

수세에 몰린 유성은 계속 피해다녔지만, 결국 한계에 다달았다. 목덜미를 잡힌 유성은 교회의 중앙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주위에는 최초로 그를 공격한 사내와 함께, 나머지 둘이서 유성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어쩐다?'

갑자기 품 속에 있던 연막탄이 떠올랐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때 사용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쉬이이익--!"

짙은 연기 속을 뚫고 유성은 재빨리 입구까지 달음질쳤다. 입구의 문을 여는 순간, 머리 위에서 굉음 소리가 났다. 곤봉 하나가 유성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유성은 두 팔로 곤봉을 막았다.

"빠악!"

곤봉에 의해 머리가 박살나는 참상은 막았지만, 그 대신 유성의 두 팔목은 이상한 형태로 너덜너덜거렸다. 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유성은 팔이 부러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안면을 향해 수차례 발길질을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발길질 한 번으로도 정신을 잃어야 마땅하지만, 가면을 쓴 괴인은 예외였다. 대신, 괴인의 얼굴을 가린 가면의 끈이 벗겨졌다. 최후의 순간, 괴인의 얼굴과 마주한 유성은 외마디 신음소리를 냈다.

"넌..?!"

"이제 알았냐? 바로 네가 말한 녀석이지."

한쪽 구석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신종 마약의 위력을 최초로 보게 돼서 영광이군. 이름하여 SMD! 이 호루라기만 불면, 누구든 간에 말 잘 듣는 슈퍼맨으로 변하지."

유성의 목을 졸라 위로 치켜든 이는 바로 양대수였다. 그의 눈은 마약 때문인지 초점이 흐릿해져 있었다.

"밖으로 던져버렷!"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고 누군가가 밖으로 튀어나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멀리서 이걸 본 진철이 급히 달려갔다.

"이봐, 괜찮아?"

유성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다. 신음소리를 제외하고, 유성이 진철의 귀에 속삭인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에 놀라지 말라구, 친구."

 

'웬 헛소리지?'

 

진철이 보기에, 유성은 당장 병원에 옮겨야 할 상태였다. 진철이 유성을 들쳐업으려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유성의 몸이 무거워졌다.

 

...

 

...

...

스으으으..!

순간 이상한 바람소리와 함께 유성의 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져갔다.

"이봐, 정신차려!"

진철이 유성을 들쳐업으려는 순간, 유성의 손 하나가 진철의 왼쪽 귀를 잡아당겼다.

"내 말 똑똑히 들어..! 날 이 꼴로 만든 놈이 누군지 알아? 바로 양대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낭랑했던 유성의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음을 내고 있었다.

"자네가 잘못 본 거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사진 속의 양대수는 누가 봐도 약골이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한 놈이 그러더군. SMD 덕분에 그리 되었다고 말야."

"우두두둑!"

사람의 뼈가 어긋나는 듯한, 섬찟한 소리와 함께 유성이 몸을 일으켰다.

"이..이봐?"

유성의 눈은 검은 눈동자가 사라져 있었다. 부러져 있던 팔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유성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진철이 막아섰다.

"뭐하는거야? 당신은 지금 중상을 입었어!"

"난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간만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되었거든."

상황에 맞지 않게 유성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진철은 깨달았다.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공포를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을...

진철의 귀에 대고 유성이 몇마디 하자, 진철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끼이이이이...

교회의 문이 열리고 피투성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돌아왔다."

선글라스는 유성을 보더니 손사래를 쳤다.

"불쌍한 자식, 그렇게 맞고도 정신 못차렸구만. 한번 더 불어주랴?"

선글라스는 호루라기를 흔들어 보였다.

"마음대로."

"그래? 이번엔 목숨 부지하기 힘들거다."

선글라스가 호루라기를 입에 대려는 순간, 교회 한 쪽의 유리창이 박살나며 총탄 한 발이 선글라스의 손을 꿰뚫었다.

"크아아아!"

선글라스는 그런 와중에도 떨어뜨린 호루라기를 주우려고 했지만, 이미 호루라기는 유성의 손 안에 있었다. 유성은 선글라스를 조롱하듯 말했다.

"불고 싶지?"

"저 놈들을 데려간다고 했지? 빨리 데려가라구, 어서!"

"그런 말은 진작에 했어야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너부터 시작해서 네 두목까지 갈아마시고 싶은 심정이야.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을 저 꼴로 만들었으니, 죄값은 해야지. 안 그래?"

유성의 손은 선글라스의 목 울대를 차츰 조여갔다.

"끄윽..!"

"어딨냐? 네 두목. 3초 안에 얘기하면 살려준다."

선글라스는 한 손으로 단상쪽을 가리켰다.

"단상 아래쪽에 내려가는 계단이.."

"무슨 얘긴지 알았다. 그만 자라."

유성은 선글라스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선글라스는 일격에 축 늘어졌다.

...

...

...

유성은 단상의 한쪽 끝을 조심스레 들어보았다. 육중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단상은 비교적 쉽게 기울어졌다. 틈이 생긴 순간부터, 지하에서부터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단상을 원래 상태로 하는 순간, 말소리는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완벽한 방음이로군."

유성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철이 말했다.

"밑에 있는 놈들이 우리 소릴 듣고 줄행랑이라도 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기우였군."

유성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유성은 진철에게 호루라기를 건네며 말했다.

"난 내려갈 테니까, 자넨 저 녀석들을 감시해주게. 호루라기만 잘 챙기면 별 일은 없을거야."

"말리진 않겠지만, 만용은 부리지 말게나. 자넬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회장님 볼 낯이 없어지니까 말야."

"말 한번 정답게 하는군."

유성은 피식 웃더니, 단상을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인 뒤 지하통로의 벽에 설치된 사다리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참 깊게도 팠군." 진철은 유성이 내려간 구멍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하는 그 끝이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

...

...

"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요?"

"좀 인내심을 갖는 게 어떻겠습니까? 괜히 대낮에 돌아다니다가 경찰 눈에 띄면 뼈도 못 추립니다."

지하 공간 속에는 M&M의 부두목 정근태를 비롯한 부하들과 서대문파 일당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같은 데서 만나자고 하는 건데..여기 계속 있다가 괜히 질식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정근태는 연신 불평을 쏟아냈고, 그 말을 듣는 나병주는 이마의 핏줄을 마구 실룩이고 있었다.

...

...

...

"툭!"

교회로 이어진 통로 쪽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엇, 뭐지? 아나톨리!"

아나톨리는 통로 주변을 샅샅이 살폈으나 수상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별일 아닙니다."

아나톨리가 뒤돌아서는 순간, 바로 뒤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아나톨리는 잠시 주춤하더니 신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의 목덜미에서부터 척추의 맨 아래 부분까지 한 줄로 길게 그어진 상처가 나 있었다. 전세계에서 악명을 떨치던 용병집단 '클레멘타인'의 리더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최후였다.

...

...

...

"타타타타타타!!"

리더의 죽음에 분개한 나머지 일원들은 적이 있다고 예상되는 지점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탄창을 전부 비우고 나자, 지하는 온통 화약연기로 가득찼다. '클레멘타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같은 상황에 익숙지 않았던 듯 연신 기침을 해댔다.

"니미! 아주 주목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만! 경찰한테 들키고 싶어서 환장했나?"

나병주가 손가락질까지 하며 욕을 퍼붓자, 정근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남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컥!"

나병주의 목은 '클레멘타인'의 한 대원의 손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희낙낙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화약고 같은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병주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손은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간 뒤였고, 병주는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했다.

"지금 이 안에, 우리가 모르는 적이 침투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오. 아무래도 누군가가 사다리를 이용해 부비트랩같은 장치를 한 것 같은데..?"

적의 시체조차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병주의 논리가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다음 순간..

...

...

...

"빠악!"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일당의 가운데에 있던 나병주는 그대로 천장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숨은 벌써 끊어졌지만, 몸은 경련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머리는 절반 가량이 먼지로 변해버린 상태였다. 아나톨리에 이어 나병주까지 희생되자, 지하실 안은 대혼란에 빠졌다.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사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두 명의 목숨이 더 달아났다.

"꼴 좋군."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기분나쁜 목소리가 훌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일당들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다. '클레멘타인'이 정예집단이라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

...

...

-AM 11:54-

단상이 느릿느릿 움직이며, 유성이 그 속에서 기어나왔다. 처음 지하로 들어갈 때와는 달리 유성은 얼굴이 매우 벌개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지 그럼. 꼭 들어야 하는 얘기가 있는데 말해줄까?"

"뭔데?"

유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앞으로 십 분만 지나면 여긴 끝장이야. 타이머를 조정해 놨거든."

"뭣?!"

유성은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난데없이 시한폭탄이라니?'

진철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순간, 그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호루라기가 생각났다.

"삐이이익!"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기도 전에 세 꼭두각시는 진철의 앞에 집결했다.

'넌 저 사람을 들쳐업어라."

진철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효과는 적중했다. 진철에게 지목받은 한 사람이 유성을 어깨에 짊어지자, 진철은 셋에게 자기를 따라나오도록 명령했다. 전날 미리 세워둔 승합차에 일행이 전부 타자, 진철은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

...

...

차가 교회에서 한참을 떨어지자, 진철은 어렴풋이 진동을 느꼈다. 차는 일반 병원이 아닌, 오대윤의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뒷수습을 하기엔 그 이상 적당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

...

...

"단순한 탈진입니다. 대략 2~3일 정도 휴식을 취하면 기운을 회복할 겁니다."

오대윤의 주치의가 직접 유성의 상태를 검사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진철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봐요, 의사선생님. 이 남자 분명히 팔도 부러지고 머리도 다쳤단 말입니다. 그냥 탈진이라뇨?!"

"내 말 못 믿겠으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던가. 속고만 살았나, 이 사람?"

진철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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