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20일, 청와대-
“오 회장 부자를 암살한 자들의 신원을 알아냈습니다.”
“말해보시오.”
침통한 표정의 대통령을 앞에 두고, 안기부장이 직접 보고를 시작했다.
“현장에 시신이 두 구가 있었는데, 둘 다 우리 안기부에서 그토록 찾고 있던 을파소의 일원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는 그들의 수괴인 김항섭이란 자였습니다.”
“잠깐 부장님, 을파소라면..다물회 소속 아닙니까? 말이 안 되는군요. 벌써 이년 전에 사라진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일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변휘성이 이의를 제기했다. 사태의 장본인인 그는, 청와대 내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내심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안기부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권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금 부활을 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각하. 이 일은 절대로 을파소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필시 해외로 도망친 다물회의 핵심 멤버들이 꾸민 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기회에, 해외의 우리 공관에 인력을 적극 투입하여 그들을 전부 잡아들이는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했다가 다른 나라들과 외교적 마찰을 빚지는 않겠소?”
대통령이 근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각하, 오대윤 회장이 누굽니까? 각하의 절친한 친구 아니었습니까! 다물회는 지금 이 사건을 통해 각하께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겁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을 내세운다면, 사소한 외교적 실례쯤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겁니다. 세부적인 계획은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관계기관과 좀 더 협의해 보고, 최선의 방책을 이끌어내기 바랍니다.”
대통령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듯 했지만, 막상 회의가 끝나고 변휘성과 둘만 남게 되자 그의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다.
“이봐요 안보고문.”
“말씀하십시오.”
“내 임기 내에, 다물회의 수장 장두영을 잡아들이는 것을 보고 싶소. 그게 여의치 않으면 놈의 최후라도 꼭 봐야만 하겠소이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안보고문에게 해외의 모든 요원들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을 드릴 테니,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갖고 돌아오시오. 타협 따위는 절대 없소.”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
…
…
“다물회 짓이라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한희정을 통해 청와대의 내부 사정을 알게 된 김진철이 혀를 찼다. 희정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미 증거가 확실한데.”
“겉으로 나온 증거만이 진실을 말해주는 건 아니오. 이건 내 직감이지만, 다물회의 수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우리 회장님을 살해하도록 종용한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요.”
“당신 말대로라면, 장두영을 직접 심문해보는 수 밖에는 없겠죠. 하지만 그는 사건 직후 캐나다를 떠나 드넓은 아프리카로 향했어요. 그를 잡아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저 검은 대륙에서 그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조차도 힘든 상황이죠.”
“지금 아프리카라고 하셨나요?”
문이 열리며, 온통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영은이 들어와 물었다. 모두의 눈길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래요.”
“만약 그를 잡아서 회장님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당신이 나서기엔 너무 위험..”
영은이 왠지 못미더운 진철이 말을 꺼내자마자 희정이 그를 제지했다.
“고마워요 영은 씨,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되도록 빨리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장두영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저한테 넘겨주세요. 회장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제가 직접 아프리카로 가서 그를 잡아오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