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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니픽션> 쇼룸 [9] | 온단테

번호 4831 | 09.10.26
조회 99 | 추천추천 5

그는 쇼룸 안으로 들어갔다. 40제곱 미터 정도의 방이다. 방은 하얀색이며, 벽에는 수백 대의 원구의 물체가 부착되어 있다.  그 물체는 홀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장치이다.  스피커에서 상쾌한 음색의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우선 고객님의 신분증을 보여주세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복 속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허공에 내밀었다. 곧 벽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신분증을 스캔하였다.

 

 

"최명석 고객님 안녕하세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구매하고 싶은 물건은 어떤 물건이신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더욱 상냥해졌다.

 

 

"음..... 잘 모르겠군요.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는 읍조리듯 말했다.

 

 

"그러신가요. 고객님은 우주물산에 근무하고 계시지요. 현재는 독신이시고, 나이는 30세 남자입니다. 거주하는 곳은 강남의 오피스텔이시군요. 맞나요?"

 

 

"네"

 

 

순간, 방 안의 모습이 바뀌었다. 원구에서 나온 입체 영상이 텅 빈 공간을 최명석이 살고 있는 방의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었다.

 

 

"거주 하는 곳이 이런 모습이시지요?" 

 

 

"뭐, 세부적인 점은 다르지만 꽤 비슷하군요."

 

 

"평상시 식사는 잘 하시나요?"

 

 

"아니요. 독신인데다가 회사일이 바뻐서 주로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생활하시더라도 식사는 꼭 집에서 챙겨드셔야 합니다. 고객님께 딱 맞는 상품이 있습니다.  만능 조리기라는 상품입니다."

 

 

입체 영상이 오븐처럼 생긴 물체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작동 방법도 단순합니다.  재료를 사서 넣기만 하면 고객님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만들 수 있지요."

 

 

"음, 사용하기가 귀찮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맛이 있을까요?"

 

 

"총 300여 종의 음식을  원터치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음식의 맛은 보증합니다. 한국 조리사 협회에서 공인된 상품입니다."

 

 

"그렇군요. 한 대 필요할 것 같네요. 휴일에 패스트푸드를 먹는 일도 지겹거든요."

 

 

"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휴일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영화를 봅니다. 극장에 가서."

 

 

"설마 요즈음도 극장에 가시나요?  고객님께서는 3D TV가 없으신가요?"

 

 

"있기는 하지만 초기 모델이라서. 43인치 밖에는 안되거든요. 작은 화면으로 보면 실감이 나지 않잖아요."

 

 

"120인치 3D TV가 보급형으로 나왔습니다.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 입체 음향 스피커와 촉감과 후각 재생기도 풀세트로 판매합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그것도 필요하네요."

 

 

"호호호. 정말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으시네요."

 

 

방의 한 면에는 커다란 3D TV가 생겼다.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흡족해 했다.

 

 

"그냥, 서서 보시기에는 불편하시지 않나요? 가구는 언제 구입하셨나요?"

 

 

"처음 이사 올 때 샀으니까 5년이나 되었군요."

 

 

"그러세요? 그러시면 아주 푹신한 가죽 소파가 필요하시겠군요."

 

 

방의 다른 한 면에 검은색 가죽 소파의 입체영상이 생겼다.   남자는 무심코 의자에 앉아 보려고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고객님 조심하세요. 이곳은 가상체험관입니다. 실제의 물건이 아니랍니다."

 

 

"하하하. 너무 실물과 똑같아서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네, 그러실 수도 있지요. 참, 고객님 자동차는 어떤 차를 타고 다니세요?"

 

 

"소나타 T3입니다."

 

 

"이런, 고객님 같이 엘리트 사원분이 그런 구형 모델을 타고 다니시다니. 요즈음 T6가 대세이잖아요.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폼도 나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답니다."

 

 

"그렇군요. 역시 그래서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았던거야!"

 

 

남자는 감탄했다. 이번에는 방의 한 가운데에 매끈한 차체의 소나타T6의 영상이 나왔다.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였고,  방의 모습은 곧 고속도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T6는 표범처럼 도로 위를 달렸다.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멋지군요! 저 차는 꼭 사야겠어요.

 

 

"마음에 드실 줄 알았어요."

 

 

이러는 사이에 최명석의 장바구니에 물건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여자 친구가 없다고 하셨는데 결혼은 언제하실 생각이신가요?"

 

 

"요즈음은 누구나 늦게 결혼하잖아요. 저도 마흔살 즈음에나......"

 

 

"아닙니다. 고객님처럼 능력 있는 분은 일찍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셔야 해요. 그래야 돈이 모이지요.  결혼정보 회사에는 등록하셨나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그러시면 서두르세요. 멋진 아가씨들이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한번 볼까요?"

 

 

이번에는 화면에 여러 여자들의 동영상이 나왔다. 그는 여자들의 모습을 살피다가 그들 중 한 명을 지목했다.  그러자 여자의 영상은 곧 입체영상으로 바뀌었다. 그의 이상형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걸어왔다.

 

 

"정말 어울리시는 한 쌍이에요. 오늘 등록하시면 내일이라도 이 여자분과 만나실 수 있어요."

 

 

"하하하! 이런 예쁜 아가씨와 사귈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만약 두 분이 결혼을 한다면 어떤 결혼식을 하실건가요?"

 

 

"그냥. 대충 하지요. 뭐."

 

 

"맙소사. 정말 센스가 없으시네요. 그런 말을 했다가는 여자분에게 퇴짜를 받았요. 저희가 최고의 웨딩컨설턴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000만원 정도면 최고급 결혼식을 하실 수 있습니다."

 

 

"모은 돈이 없는데......"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의 모습이 휘황찬란한 결혼식장으로 바뀌었다.  이상형의 여자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게 고객님의 미래에요. 정말 아름답지요?"

 

 

남자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낭만은 곧 끝이 나고 맙니다."

 

 

쇼핑중개인이 근엄하게 말했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장 급한 문제는 내 집 장만입니다. 좁은 원룸에서 두 사람이 살 수 없잖아요. 우선 아파트로 이사가셔야 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아기가 태어나겠지요?"

 

 

결혼식장은 아파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따뜻한 느낌의 거실이었다.  거실의 소파에는 그의 아내와 아기가 잠을 자고 있었다.  

 

 

 

"정말 귀여운 아기네요. 그러나 곧 아기는 자라날 것이고. 교육비가 들겠지요. 자녀분을 고객님과 같이 우수한 인재로 키우려면 외국 유학은 필수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해외 영재 스쿨에 입학하는 상품입니다."

 

 

아기는 순간 초등학생이 되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유창하게 영어를 하였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실꺼에요."

 

 

남자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그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총 비용은 5억이 넘었다.

 

 

"돈이 많이 드는군요. 저는 모아놓은 돈이 변변치 않아서......"

 

 

"걱정 마세요. 고객님을 위해서 저리의 대출 상품도 준비했습니다.  고객님 정도면 신용대출로 1억은 거뜬히 받으실 수 있습니다. 1억으로 우선 차와 생활 물품을 구매하세요. 그리고 당장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시고요. 단 하루면 이 모든 것이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집을 사실 때는 집을 담보로 또다시 대출을 받으면 되세요. 계산을 해 보니. 고객님의 연봉의 50% 정도면 30년 동안  원리금 균등 상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됩니다."

 

 

남자는 망설였다.

 

 

"자, 지금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오늘 당장 돈이 입금됩니다. 오늘 당장 신차를 받으실 수 있어요."

 

 

쇼핑중개인은 재촉하였다.

 

 

 

"좋은 구경이었습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금액이 부담 되시면 TV라도 사세요.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어요."

 

 

"아니요. 됐습니다."

 

 

 

 

 

남자는 쇼룸에서 나왔다. 그는 거리를 걷다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꾸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최명석이란 놈은 참 멋진 인생을 살겠군."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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